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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개발자로 인생역전이 가능할까? - 1

DQ-admin 2020. 2. 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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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수저 자랑을 하고자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흙수저라는 정체성이 나의 지난 삶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 이렇게 어그로성 제목을 선정했다.

근 5년... 아니 10년 정도는 ‘수저론’의 열기 때문인지 유독 흙수저 인증, 금수저 자랑 등이 인터넷 상에 눈에 띄었다. 나도 넷상에 정신의 50% 이상의 지분을 할애하던
방구석찐따 중 한명으로서 그런 글들을 보며 나도 흙수저 축에는 들 수 있겠지... 그냥 그런 생각을 하며 10년을 살다보니 남에게 자랑하거나 티를 내진 않았지만 나 나름대로는 나의 정체성을 '흙수저'라고 정의해버렸다.
‘흙수저’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발버둥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학창시절

가난과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는 절망감, 어린 아이에겐 어울리지 않는 감정 같지만 그렇게 어린 아이는 애어른이 되어갔다.
소년에게 가난을 벗어나 그 자신의 자녀에게 은수저 이상을 물려줄 방법은 공부 뿐이었다. (라고 굳게 믿었다.)
사회성이 부족했던 중학교 시절, 친구가 없었던 그에게 공부로 인정 받을 수 있는 학교라는 공간은 제법 재밌는 곳이었다.
친구들은 때로는 선생님들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선생님들을 형,누나처럼 따르며 전형적인 재수없는 모범생  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의 고등학교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 입시에 운이 따라 나름 한국의 명문대라는 곳에 진학하였다.

명문대에 진학하였으니 꽃길만 걷자는 소년의 기대는 6개월 만에 무너졌다.
아버지 사업이 파산한 것이다.

 

대학생활

청년은 자신에게 씌워진 흙수저라는 정체성을 없애고 싶어 과외로 돈을 벌게 되자마자 자취방을 구한다.
집과는 연을 끊다시피 하고 밤에는 학원/과외 알바를 전전하며 돈을 모았다.
학교 수업에 가지 않거나 가서도 조는 것이 다반사였으니 학점은 학고만 면하는 수준이었다.
평일/주말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과외를 했으니 버는 돈은 대기업 초봉 수준으로 벌었지만, 
새벽엔 음주가무, 낮엔 게임, 아버지를 닮아 술자리에서 한 잔, 두 잔 사는 습관.
그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였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삶을 망치는 것은 청년이 캐나다행 비행기를 탈때까지 계속 되었다.


컴퓨터와의 조우

인생에 답이 없다고 느낀 청년은 돌연 캐나다행을 선언한다.
캐나다에서 조기유학을 하는 중/고등학생을 관리/과외하며 캐나다에 살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게 된 것이다.
노답이었던 청년의 인생이 외국에 나간다고 갑자기 짠하고 길이 보일리는 없었다.
다만, 술 마실 친구들이 없어졌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저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발판은 마련하게 되었다고 해두자.


혼자 있는 시간은 온라인 공간에 온전히 정신을 던지고, 누구보다 바쁘게 웹사이트들을 돌아다녔다.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어떻게하면 가난을 벗어나 계급을 상승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정보들도 머릿 속에 쑤셔넣었다.

그 중 가장 오랜 시간 열심히 하게 된 것이 coursera 강의 였다.
컴퓨터로는 게임밖에 할 줄 모르던 청년이지만, 머신러닝/딥러닝, 데이터 사이언스 등
어디서 들어보기만 한 가슴뛰는 말들에 열정을 불태우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청년의 머릿속에는 지식노동으로 계급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그 어렸을 때의 믿음 같은 것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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